아마존을 넘어서는 국내 쇼핑몰들

내가 처음 아마존에 입사했던 2016년 말에는 국내 온라인 쇼핑몰들이 제공하는 쇼핑 경험과 아마존에서의 쇼핑 경험은 큰 차이가 있었다. 특히 ‘아마존 프라임’이라는 멤버십 프로그램이 국내에선 전례가 없는 것이다보니 왜 전세계에서 1억 5천만명이 아마존에 비싼 연회비를 자발적으로 내고 프라임 멤버라는 충성 고객이 되는지, 아마존의 구조는 국내 쇼핑몰들과 어떻게 다른지, 아마존에서는 고객 리뷰가 왜 중요한지 등에 대해서 직구를 많이 해보신 분들이 아니면 잘 이해하지 못 했다. 그래서 그 차이를 국내 기업들께 말씀드리고, 아마존에서는 국내 온라인 판매와는 다른 전략과 mindset이 필요하다는 점에 대한 이해를 돕는데 많은 노력을 쏟아야 했다.

그러나 거의 4년이 지난 지금 국내 온라인 쇼핑몰 업계의 판도 자체가 크게 바뀌었고, 특히 뚜렷한 강자가 없던 4년 전과 달리 쿠팡과 네이버가 급속도로 성장해 몇 년내에 국내 이커머스는 두 회사가 양분하게 될 것이라는게 업계의 지배적인 견해다 (패션, 중고거래 등 특정 버티컬 제외한 범용 이커머스 측면). 재미있는 점은 쿠팡과 네이버는 점점 아마존을 닮아가고 있다는 점이고, 심지어 특정 영역에서는 아마존보다 뛰어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조스는 지속가능한 사업을 만들려면 미래에 생길 변화보다는 변하지 않는 가치에 주목하라며, 10년이 지나도 고객이 온라인 쇼핑몰에 원하는 변하지 않는 가치는 Selection (다양한 제품), price (낮은 가격), convenience (편리한 구매와 배송)’라고 언급했다. 난 이 말을 Amazon Go같이 주목받는 혁신 기술도 중요하지만, 아마존이 진정으로 집중하는 것은 변하지 않는 3가지 가치를 고객에게 주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해석한다.

그래서 이 3가지 가치 측면에서 쿠팡과 네이버의 쇼핑 경험이 아마존과 어떤 면에서 유사한지, 그리고 국내 기업들의 이커머스 전략은 그에 맞추어 어떻게 진화해야 하는지 생각을 정리해봤다.

(*이 글은 순수히 개인적인 견해를 담고 있으며 아마존의 공식 입장과는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1) convenience (편리한 구매와 배송) 측면에서의 3가지 큰 변화

1. 배송 속도의 혁신: 쿠팡의 로켓 배송으로 촉발된 배송 속도 경쟁

2. 멤버십 도입: 쿠팡 로켓와우, 네이버 플러스

3. 결제 편의성: 쿠팡 원터치결제, 네이버 페이

아마존이 미국 전역에 물류센터를 짓고 기존에 최소 5일 이상 걸리던 배송을 2일로 단축한다고 발표했을 때, 업계에서는 다들 미쳤다고 했었다. 광활한 미국 내 배송을 이틀 내로 단축하려면 엄청난 물류 및 재고 사입 투자가 필요한데, 그걸 감당할 수 있냐는 비판이었다. 쿠팡이 로켓 배송을 도입한건 2014년 3월인데, 쿠팡도 동일한 비판을 받았다. 그 전까지 G마켓, 옥션, 11번가 등의 다른 오픈마켓들은 시장을 과점한 상태에서 배송에 대해서는 전혀 신경쓰지 않았고, 입점 셀러가 알아서 하게 냅뒀다. 쿠팡이 로켓 배송을 처음 도입했을 때, ‘우리나라는 국토가 작고 택배비도 싸서 보통 하루 이틀 내에 저렴한 비용으로 배송이 되는데, 당일 배송이 무슨 혜택이라고 엄청난 돈을 쏟아붓냐’라는 회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6년이 지난 지금, 이제 우린 소비자들이 쿠팡 로켓 배송의 편리함에 중독되었다는 걸 알고있다. 기존 온라인 구매 경험에서 가장 안 좋은 부분이었던 ‘배송’ — 셀러가 재고는 있는지, 내 주문을 빨리 배송하는지 불안해하고, 내 택배는 어디쯤 왔는지 계속 조회해봐야하는, 그리고 반품 과정이 완전 번거로운 — 의 불편함을 완전히 해소했다. 그리고 아마존의 FBA와 비슷한 ‘로켓 제휴’도 최근 런칭한 걸로 보인다 (쿠팡 블로그).

로켓 배송의 성공은 아마존 프라임 멤버십과 유사한 ‘로켓와우’ 멤버십의 런칭으로 이어졌다. 택배비 한 건 비용인 월 2,900원에 로켓배송 상품 무제한 무료 배송, 무료 반품을 내세운 로켓와우 멤버십은 8개월만에 250만 회원을 확보했다 (기사). 2,900원만 받고 무제한 무료 배송을 해주는건 엄청난 규모의 적자를 유발하지만, 쿠팡은 아랑곳하지 않고 소비자들이 쿠팡에서만 구매하는 습관을 만들기위해서 적자를 감내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네이버의 쿠팡 견제가 만만치 않다. 네이버는 온라인 검색의 압도적인 점유율+수수료가 매우 낮은 스마트 스토어+네이버 페이 3가지 무기로 이커머스 사업을 빠르게 키워왔다. 2019년에 우리나라 소비자들은 네이버에서 20.9조원을 결제해 쿠팡(17조원)을 앞질렀다 (출처). 네이버는 올해 1분기 스마트 스토어의 거래액이 전년 동기 대비 56% 성장하고, 네이버페이 거래액도 전년 대비 46% 증가했다고 밝혔다. 코로나19의 수혜덕도 있었겠지만, 네이버의 기업 사이즈를 생각하면 정말 미친 성장율이다. 쿠팡 로켓와우에 비하면 많이 부족해보이지만 네이버 플러스라는 멤버십도 내놓았다.

쿠팡과 네이버는 결제 편의성에서도 경쟁하고있다. 불과 몇년 전만해도 액티브엑스/공인인증서때문에 온라인 쇼핑하다가 혈압올라서 구매를 포기하던시절이 있었다. 이젠 쿠팡 로켓페이에 가입하고 원터치 결제를 이용하면 주문하면 바로 결제가 된다. 하지만 쿠팡 로켓페이는 쿠팡 내에서만 사용 가능한 반면, 네이버 페이는 압도적인 사용 편리성과 포인트 적립율을 무기로 스마트 스토어는 물론이고 외부 중소형 쇼핑몰에서도 가장 범용적인 결제 수단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는 1997년 아마존이 내놓은 간편결제의 시조 ‘원클릭’과, 아마존 외부에서도 사용가능한 ‘아마존 페이’와 유사하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중소형 쇼핑몰에서 제품 하나 사기위해 회원가입하는 것도 번거롭고 포인트 쌓아봐야 언제 쓸지 기약도 없는데, 네이버 포인트로 적립해준다고 하니 안 쓸 이유가 없다.

2) Selection / Price 측면의 혁신

다양한 제품을 검토해보고 그 중 제일 좋은 걸 가장 싸게 사고싶은건 쇼핑하는 사람의 기본적인 욕구다. 근데 과거 국내 오픈마켓들은 그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못 했다. 그 이유는 동일한 제품을 셀러들이 다 별개의 제품 상세페이지로 등록하도록 함으로서, 소비자들이 그걸 일일이 비교해서 같은 제품인지 확인해야하고, 상세 페이지마다 별도로 달려있는 고객 리뷰를 돌아다니며 읽고, 배송비 포함인지 별도인지 확인해서 진정한 최저가를 계산하고, 제일 싸게 파는 사람에게 구매해야했다.

예를 들어서 ‘이니스프리 수퍼 화산송이 모공 마스크 2X 100ml’ 제품을 G마켓에서 검색해보면, 동일한 제품을 36개의 셀러가 팔고있는데 상세페이지를 각자 보유하고있다. 각 제품 상세페이지를 들어가보면 제품 소개 컨텐츠 내용도 다 제각각이며, 구매자 리뷰는 없는 경우가 태반이다.

(G마켓 검색결과 페이지)

이번에는 쿠팡에서 같은 제품을 검색해보자. 일부 변형 제품이 추가로 나오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셀러가 각자 상세페이지를 만드는 구조가 아니라 같은 제품을 판매하는 셀러들이 한 상세페이지 내에 모두 소개되는 구조다. 그래서 가장 싸게 파는 셀러를 자동으로 추천해주고 (다른 판매자보기를 눌러야 다른 셀러들의 판매 조건을 볼 수 있음), 제품 소개 컨텐츠는 동일하고, 리뷰 역시 상세페이지 하나에 모두 모아서 706개를 보여준다.

소비자 입장에서 어디서 구매하는게 편리할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명백하다. 이렇게 소비자에게 가장 유리한 조건에 판매하는 셀러에게 구매하도록 추천하는 시스템을 쿠팡은 ‘아이템 위너’라고 부르는데, 이는 아마존의 ‘Buy box’와 거의 동일한 기능이다.

네이버 역시 검색 엔진의 장점을 살려, 가격비교 과정에서 여러 오픈마켓에 올라온 동일한 제품들을 최대한 모아서 최저가를 보여주고 리뷰도 통합해서 볼 수 있게 해주고 있다. 그러나 위에 언급한 이니스프리 제품의 경우, 제품 개수가 250개나 나오는걸 보면 쿠팡처럼 모아서 보여주는데는 한계가 있어보이고 제품 카테고리에 따라 차이가 큰 것같지만, 통합만 잘 되면 리뷰 개수가 쿠팡보다 훨씬 많다.

‘이게 뭐 큰 차이인가’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소비자의 쇼핑 경험과 과정에서는 아래와 같은 큰 차이가 있고, 이는 쿠팡/네이버와 다른 오픈마켓과의 엄청나게 큰 차별화 포인트가 된다. 그리고 현재의 모습은 미국 소비자들이 검색엔진을 거치지 않고 바로 아마존에서 검색/구매하는 비중이 높아지는 것과 비슷하다

  • 기존: 어떤 제품을 구매하고싶다
    → 네이버에서 검색해서 블로그, 기업 홈페이지 등에서 제품 리뷰를 읽어보며 적절한 제품을 찾는다. 광고성 리뷰일 수도 있기 때문에 신뢰성이 낮다
    → 못 미덥지만 구매 제품을 결정한뒤 네이버 또는 다나와에서 가격비교를 한다
    → 최저가 판매자를 찾아 구매한다. 이 과정에서 오픈마켓에 대한 충성도는 전혀 생기지 않는다. 배송이 언제 올지 불안해하며 기다린다
    → 제품이 마음에 안 들면 반품비용을 내야해서, 짜증나지만 그냥 반품 안한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불안하면 아예 안 산다.
  • 현재: 어떤 제품을 구매하고싶다
    → 쿠팡 로켓와우 회원이라면 쿠팡에서, 그렇지 않다면 네이버 쇼핑에서 검색을 한다 (심지어 쿠팡 이용자들은 로켓 배송이 되는 것만 골라서 본다)
    → 제품 상세페이지에서 실제 구매자들의 리뷰를 읽어보고 구매 결정 후 바로 구매한다. 당일에 또는 다음날에 바로 제품을 받는다.
    → 제품이 마음에 안 들어도 로켓와우 회원은 무료 반품이 가능하다. 그래서 조금 불안해도 일단 주문한다.

3) 쿠팡/네이버 시대의 이커머스 전략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쿠팡과 네이버 주도 하에 국내 이커머스 시장은 과거와는 완전히 달라지고 있으며, 이러한 변화에 맞추어 앞서가는 기업들의 이커머스 전략 역시 진화하고 있다고 본다.

먼저 ‘제조사의 직접 판매 대세화’가 가장 큰 변화다. 기존에는 대형 제조사들은 대부분 대리점들을 통해 온라인 판매를 진행했으며, 매출이 정체된 오프라인 대리점들 역시 온라인 판매에 가세했고, 이들이 모든 오픈마켓에 제품을 따로 등록하면서 위에 언급한 것처럼 같은 제품에 대해서 수십, 수백건의 상세 페이지가 존재하는, 하지만 제품 정보는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 상황이 벌어졌었다.

하지만 이제 제조사 본사에서 자사몰은 물론 오픈마켓에도 직접 제품을 등록하고 판매하는 형태로 변화하고 있다. 특히 아마존에서 위에 언급한 변화를 미리 경험한 기업들이 가장 빠르게 적응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아마존에서 인기 브랜드가 되어 지난해 3천억 이상의 매출을 기록했고 매출의 80% 이상을 미국/유럽에서 벌고 있는 슈피겐 코리아의 사례를 보자.

아래의 네이버 검색결과를 보면 네이버 스마트 스토어에 개설한 슈피겐 코리아 공식 스토어를 포함, 모든 오픈마켓의 판매 가격이 동일한데 이는 모든 오픈마켓에 슈피겐 본사가 직접 판매자로 등록해서 가능하다. 그러다보니 각 오픈마켓의 제품 상세 페이지 정보도 모두 동일하며, 네이버에서 무려 4.8의 평점과 2만개의 리뷰를 볼 수 있다. 쿠팡에도 입점했는데 여기도 평점 4.5에 36개의 리뷰가 있고, 당연히 로켓배송이 된다. 이러한 전략은 아마존에서 성공 후 국내에 역진출한 앤커 (Anker), 지누스 등의 브랜드에서도 동일하게 볼 수 있다.

특히 D2C (direct to customer)가 대세임을 알면서도 자사몰만의 혜택을 제공하기 어렵고 소비자 모객에 드는 비용이 부담이었던 브랜드들에게 네이버가 ‘브랜드 스토어’를 자사몰의 보완책으로 제안하면서 삼성전자, LG전자는 물론 구찌같은 명품 업체들도 네이버 브랜드 스토어에 입점했다 (관련기사).

두번째 변화는 신생 브랜드들이 뛰어난 가성비와 구매자 리뷰를 기반으로 쿠팡/네이버에서 급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위에 언급한 우리나라의 슈피겐/지누스, 중국의 앤커의 공통점은 아마존에서 태어나 수천억원대로 성장한 (앤커는 1조 이상) 브랜드라는 점이다. 이 브랜드의 성공 비결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내가 만나서 이야기해보며 느낀 점은 아마존의 철학인 ‘Customer Obsession (고객 만족에 대한 집착)’을 이 브랜드들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대기업들과 달리 이 회사들은 CEO부터 실무자까지 모두 아마존 구매 고객들의 자사 제품 리뷰를 꼼꼼히 읽고, 고객들이 조금이라도 불편함을 느끼는 부분이 있으면 다음 제품 개발에 꼭 반영하여 제품 품질을 개선하고 고객 만족도를 높인다. 앤커는 심지어 고객들의 평점이 4.5 이하로 나오는 제품은 단종시키고 아마존에서 판매를 중단할 정도로 고객 리뷰에 집착한다. 그러면 슈피겐/앤커를 처음 접한 고객이라도 높은 고객 만족도와 긍정적 리뷰들을 믿고 제품을 사게 되고, 제품에 만족하여 재구매로 이어지면서 브랜드 가치가 높아진다. 이처럼 고객들의 충성도가 높은 쇼핑몰에 진짜 구매자들의 리뷰가 체계적으로 축적되면, 그 쇼핑몰에서 신생 브랜드들이 탄생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

잠시 내 현 직장인 아마존이 아닌 전 직장인 구글에서의 경험을 공유하면, 9년전 내가 구글코리아에 입사했을 때 국내 디지털 마케팅 환경은 글로벌과는 너무나 동떨어져있었다. 국내 시장은 네이버와 싸이월드가 장악하고 있었고 구글, 페이스북, 유튜브는 일부 얼리어답터들만 쓰던 시절이었고, 광고주들은 ‘한국 사람들은 외국 서비스를 선호하지 않으니 굳이 구글, 유튜브, 페이스북 등에서 마케팅을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황당한데, 모든 기업들이 유튜브 마케팅에 관심을 갖게되어 유튜브 마케팅 전문 기업들이 상한가를 치게 된게 불과 최근 3~4년 사이의 일이다.

이제 이커머스 업계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본다. 즉 아마존에서 글로벌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전략과 기술을 배운 브랜드들이 쿠팡/네이버를 중심으로 한 국내 이커머스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게 될 것이며, 오프라인에만 주력하는 회사/이커머스는 대리점에게 맡기는 회사들은 장기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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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민규의 마케팅/Tech 이야기

Vice President@LG Display I Ex-Amazon, Google, Riot Games I Marketing, Tech, 글쓰기, 기업 문화 등에 관심이 많은 비즈니스맨 I https://www.linkedin.com/in/justinmkj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