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에서 아마존처럼 일하기 1 — 보고와 회의
(링크드인에 올렸던 글에 많은 분들이 호응해주셔서 블로그로 옮깁니다)
LG에 온지 어느새 2년이 다 되어갑니다. 제일기획이 첫 직장이긴 하지만, 10년동안 외국계 회사만 다닌 제가 대기업, 특히 제조업으로 간다고 했을때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걱정하는 분들이 많으셨죠. 다행히 ‘인화의 LG’라는 말처럼, 외부에서 온 사람이라고 견제하지 않고 잘 적응할 수 있게 많이들 도와주셔서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LG라는 대기업에서 아마존처럼 일하기를 조금씩 시도해온 내용들을, 업무 비밀이 아닌 건들에 한해 공유하고자 합니다. 물론 외부 영입된 리더가 ‘이 회사의 방식은 잘못되었고, 내가 다녔던 전 회사의 방식이 좋다’는 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건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건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조직 문화와 일하는 방식을 끊임없이 개선하는 것도 리더의 역할이라, 업무 효율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아마존에서 배운 방식들을 조심스럽게 적용해봤습니다.
제가 가장 먼저 시도했던건 제 팀원들이 저에게 보고하는 자료의 최소화, 자료의 depth 강화, 수평적인 논의 문화였습니다. 제가 LG에 와서 처음에 가장 쇼킹했던건 보고서와 보고 방식이었는데요, 옛날에 맥킨지에서 도입했다는 글자와 표, 각주가 엄청 빽빽한 PPT 문서가 아직도 모든 보고와 논의 자료의 표준이더군요. 사실 PPT는 내용보다 형식에 더 신경을 많이 쓰게되고, 작성에 많은 시간이 들기 때문에 아마존은 물론이고 많은 기업들에서 비효율적이라고 판단하고 있죠. 내부 구성원들 역시 PPT 보고서 작성이 너무 비효율적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된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업무 파악이 된 후 아래와 같이 보고 방식의 변화를 팀원분들께 제안했습니다.
1. 제 윗선의 승인이 필요한 보고 자료는 어쩔 수 없이 PPT로 계속 만들어야겠지만, 제가 의사 결정할 수 있는 건이라면 PPT 작성하는데 절대 시간 낭비하지마시고, 이메일 본문에 빠르게 정리해서 공유하는 걸 default로 하고, 필요하면 그 내용을 토대로 잠깐 모여서 논의.
2. 대시보드/주간업무처럼 내용이 많아 메일에 쓰기 어려운 자료는, PPT가 아닌 엑셀로 정리해서 공유
3. 미팅 시에 메일이나 PPT에 정리한 내용 발표는 최소화. 발표자가 소리내어 읽는것보다 눈으로 문서를 읽는게 훨씬 빠름. 대신 논의에 집중.
그리고 대시 보드의 경우 굳이 불필요한 설명글을 덧붙이지 말되, 대시보드에 포함되어야 할 데이터의 종류와 depth는 강화했습니다. 기존에 있던 KPI를 정교화하고, 모든 프로젝트의 월 단위 목표와 현재까지의 YTD 진척율을 명확히 볼 수 있게 내용을 보완했습니다. 사실 아마존에서 쓰던 디지털 마케팅 대시보드에는 10개 이상의 지표들을 주 단위로 목표를 세우고 주간/YTD 달성율, YoY 등을 모니터링했었는데,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지표들을 주기적으로 모니터링하면서 개선점을 찾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건 수평적인 논의 문화의 구축이었죠. 먼저 팀장이나 연장자가 직급이 낮거나 나이가 어린 분에게 반말을 쓰는 문화가 있었는데, 최소한 회의 때라도 서로 존댓말을 쓸 것을 요청했습니다. 나에게 반말을 쓰는 사람에게는 소신있게 의견을 제시하기가 어렵고, 외부에서 경력으로 입사한 직원 입장에서는 ‘저 사람은 날 언제부터 알았다고 반말을 쓰지?’라는 반감을 가질 수 있죠.
그래서 사원/선임들도 자유롭게 의견을 제안하고 토론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고, 회의 때에는 “나보다 이 건에 대해서 수백배 더 많이 고민한 실무자들의 의견이 더 중요하다”며 계속 실무자분들의 의견을 물었습니다. 아마존에서는 ‘Backbone을 가져라’라는 말을 많이 썼는데요, 상대방이 임원이나 나보다 훨씬 높은 사람이라도 그 사람의 의견이 잘못되었고 내가 맞다고 생각되면 본인의 의견을 굽히지말라는 겁니다. 어느 조직에나 꼭 필요한 문화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제 조직 안에서는 깊은 분석을 통한 빠른 의사결정과, 수평적인 논의가 가능한 문화가 조금이나마 정착된 것같습니다.
도움이 되셨다면, ‘대기업에서 아마존처럼 일하기 2편 — 오너십 강화’ 편도 읽어보세요 :)